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해자와 사건개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영구미제 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해서 정리해보겠다. 이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차례로 살해당한 사건이다. 당시에 비슷한 지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연쇄살인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서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증거, 목격자에 대한 진술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당시에 총 180만명의 경찰이 동원되고 3천여명의 용의자와 목격자를 조사하고 진술을 받아봤지만 역시 해결할 수 없었던 사건이다. 이를 모티브로 했던 영화는 살인의추억이 있었고, 드라마로는 시그널이 있었다.
살해수법은 여성을 타겟으로 한다. 성폭행을 하고 속옷을 얼굴에 씌우고 손과 발을 묶고 살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흉기에 찔린 상처가 몸에 많이 있는데 피가 많이 나지 않는 것으로보아 흉기로 죽인것이 아니라 죽은 뒤에 찔렀을 수도 있다고 한다. 정말 잔인한 놈이다.
비오는날에 빨간옷을 입은 여자가 범행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은 루머이고 실제로 살해당시에 비가 왔던 적은 2차례 뿐이라고 한다.
이제 사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다루는데 여기엔 사건현장의 사진들이 있는데 이것이 여러분들의 기분을 불쾌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호기심 때문에 이렇게 자세히 적는것도 아니고 사건의 내용을 정확히 알리고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한다는 취지에서 적는 것입니다. 모자이크 되어 있지만 비위가 약한 분들은 안보시는것도 좋을 것 같아요.

피해자목록

  • 1차 1986년 9월 15일 태안읍 안녕리 풀밭 이x이(71세)
  • 2차 1986년 10월 20일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 박x자(25세)
  • 3차 1986년 12월 12일 태안읍 안녕리 축대 권x순(24세)
  • 4차 1986년 12월 14일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 이x선(23세)
  • 1986년 12월 30일 범인에게서 벗어난 최초의 생존자
  • 5차 1987년 1월 10일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 홍x희(18세)
  • 6차 1987년 5월 2일 태안읍 진안리 야산 박x수(30세)
  • 7차 1988년 9월 7일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안x순(52세)
  • 8차 1988년 9월 16일 박x희(14세) – 다른 범인으로 잡힘(모방범)
  • 9차 1990년 11월 15일 태안읍 병점리 야산 김x영(14세)
  • 10차 1991년 4월 3일 동탄면 반송리 야산 권x자(69세)

1차살인사건

지금으로부터 31년 전인 1986년 9월15일 이날 오전 6시20분쯤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의 한 풀밭에서 71세 여성이 하의가 벗겨지고 흉기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된다.

화성연쇄살인사건 1차사건

1차살인사건 피해자


신원확인 결과 동네주민 71세 이x이씨였다. 이모 할머니는 9월14일 정남면 백리의 밭에서 재배한 채소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데 그날도 채소를 팔기 위해 읍내 시장으로 향했다. 채소를 팔고나면 가까이 수원에 있는 딸네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15일 새벽 아침을 먹고 가라는 딸에게 인사를 하고 아침 일찍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인사였다. 그 후 소식이 끊기고 실종됐는데 실종신고 후 5일 만인 19일 오후 2시경 차가운 풀밭에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딸의 집에서 10분, 자신의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안녕리 길옆 풀밭에서였다. 발견자는 소에게 먹일 풀을 베려고 나왔던 마을의 한 목장 주인이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1차피해자 양말


화성연쇄살인사건 증거물

화성연쇄살인사건 1차피해자 고무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육안으로 봤을 때 성폭행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의가 벗겨져 있었기 때문에 추행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당시 버스가 딸이 살고 있던 집까지는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버스가 다니는 큰 길까지 걸어가다가 범인의 눈에 띄어 풀밭으로 끌려가 살해된 것으로 보여진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딸은 엄마가 아침만 먹고 갔더라면 이런일을 당하지 않았을텐데라며 무척 괴로워했다.
당시 현장에는 새벽이라 이슬이 내린 이유도 있는데 범인의 지문, 유류품, 족적 등의 흔적은 일절 발견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고무신과 양말만이 버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야채를 팔아 얼마 돈이 없었을텐데 그 돈마저도 범인은 가져갔다.
경찰은 부검을 의뢰했는데 부검결과 사인은 목을 졸라 살해했던 것(액살)이고 현장에 버려진 피해자의 양말을 감정한 결과 질액은 양성반응이 나왔으나 정액은 양말이나 질 내에서 나오지 않았다.

2차살인사건

두번째 살인사건은 1차사건 후 35일 후 발생했다. 10월20일 오후 2시쯤 송탄시 신정동에 살고 있던 25살 박모양은 태안읍 송산리에 살고 있는 수양어머니 허모씨(45세)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스무살이 넘어 예쁜 미모로 동네에 소문난 박모양은 허모씨가 좋은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는 말에 블라우스와 치마로 예쁘게 꽃단장을하고 허모씨의 집에서 남자와 식사를 한 뒤 밤 8시50분쯤 더 있다가 가라는 허모씨의 말을 뒤로하고 송탄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긴 농수로 둑길을 걸었다. 역시 그것이 허모씨와 박모양의 마지막 인사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2차피해 농수로 현장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2차피해자 사건현장


1차사건 현장에서 불과 4km정도의 거리의 농수로의 콘크리트 수로 속에서 사흘 후인 23일 오후 2시경 시체로 발견됐다.
박모양도 1차사건과 마찬가지로 옷이 모두 벗겨지고 스타킹으로 목이 졸린 흔적과 드라이버 같은 뾰족한 흉기에 전신에 4곳이나 찔린 상태였다. 정말 잔인하게도 박씨의 음부 안에서는 여러 개의 복숭아 조각이 나왔다. 범인은 박씨를 성폭행한 다음 목을 졸라서 살해하고,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한건지 복숭아 조각을 성기 안에 넣는 엽기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피해자의 옷들은 농수로 둑에 버려져 있었고 부검결과 정액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혈액형 분석에는 실패했고 현장에 있던 우유팩, 담배꽁초, 모발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감정한 결과 B형으로 판정됐다.
평소 박모양을 예쁘다고 말하며 취조 과정에서 늘 ‘ㅇㅇ이 예쁘다, ㅇㅇ이 예쁘다’라고 말한 용의자가 있었는데 수사결과 사건을 저지를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판단이었고 여러사람을 조사했지만 뚜렷한 수사결과는 없었다.

3차살인사건

두번째 사건 발생한지 약 2달 후 12월 12일 세 번째 피해자가 발견된다. 24세의 주부 권씨다.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10시30분쯤 버스에 올라타 밤 11시쯤 안녕리 삼거리에서 내린 권씨는 귀가중 그녀의 집까지 불과 1백 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 피살당했다. 양손이 뒤로 묶여 있었고 소리치지 못하도록 스타킹으로 입에 재갈을 물린 뒤 성폭행 후 목을 졸라 살해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3차 사건현장


그런데 범인은 시신을 모래 푸대가 있는 곳에 시신을 숨겼고 겨울이라 시체도 썩지 않아 안타깝게도 권씨의 사체는 4개월이 지난 1987년 4월23일 논두렁 보수작업을 하던 논주인 29세 김모씨에 의해 발견됐다.

4차살인사건

무슨 이유에서인지 범인은 3차사건 바로 이틀 뒤인 12월14일 또한번 살인을 한다. 23세의 이모양은 수원 시내의 한 다방에서 맞선(소개팅)을 봤다. 이모양이 살고 있던 동네는 관항리였는데 미모로 소문이 자자했었다. 상대 맞선남은 이모양이 마음에 들었었고, 양측 부모님들이 떠난 뒤 둘은 자리를 옮겨 데이트를 하고 이모양은 밤 11시가 되어 버스를 탔다.
이모양이 당시에 다니고 있던 회사는 정수섬유라는 곳이었는데 기숙사가 있어서 기숙사에서 잘까 생각하다가 집에서 어머니와 오빠가 걱정하겠다는 생각에 집으로 향하게 된다.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 1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는데 귀가하던 중 범인을 만나 살해당한다.
그녀가 맞선을 본 뒤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밤새 그녀를 기다리며 걱정하다가 날이 밝아서 상대 맞선남과 친구들 등 여기저기 연락해보지만 그녀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고 이틀이 지나서 경찰에 신고를 한다.
위에서 말했던 3차 피해자의 사체는 다음해인 4월에야 찾아지기 때문에 당시에는 연쇄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고 실종으로만 생각해서 수사를 했다. 그러다 밤 11시경에 장남면에서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본 목격자가 나타나며 농수로와 관항천 일대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그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수사는 계속됐고 지속적인 수색 끝에 사건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난 12월21일 낮 12시30분경 관항천 둑에서 들깻단에 덮여 있던 그녀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4차 피해현장


사건 현장에서 그녀의 블라우스로 양손이 뒤로 묶여있었고 거들이 머리에 뒤집어 씌여진 채 스타킹으로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 특이한 점은 블라우스 겉에 입었단 빨간색 투피스 자켓은 입혀져있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4차피해자


그리고 그녀의 시신과 함께 핸드백, 우산, 손수건 등의 유류품들도 들깻단 속에서 나왔고 우산 손잡이 쪽에 혈흔이 묻어 있고 하체가 훼손된 것으로보아 범인이 우산으로 못된짓을 한것으로 추정된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4차피해자 유품


1986년 9월15일에 시작된 살인은 연말 12월14일까지 4차례에 걸쳐서 진행됐다. 물론 당시에는 3차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3명으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주민들의 공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5차살인사건

1987년 새해가 바뀌어도 범인의 살인은 멈추지 않는다. 1월10일 오후 8시50분쯤 태안읍 황계리의 한 논바닥에 친구를 만나 즐겁게 놀고 귀가하던 19세의 여고생 홍모양이 살해된다. 홍모양은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빨리 취직해서 돈벌기 위해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내던 중이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수원에 살고 있는 친구와 함께 수원 북문 근처에서 만나 저녁 8시 30분까지 즐겁게 수다를 떨고 화성시 태안읍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50분경 태안읍과 진안리의 경계인 반정리의 버스정류소에서 내려 걸어갔다. 큰길을 따라 걸어가면 20분이 더 걸리기 때문에 지름길인 황구천 둑길을 따라 걸어갔다.
저 멀리 집 근처에 있던 엔젤악기의 하얀 공장과 안녕리의 낮은 산동네가 보이자 걸음을 빨리하며 둑 중간쯤에 온 그녀는 둑 아래에 숨어있던 범인에게 살해당한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5차 논바닥 현장


다음날인 10일 아침, 논주인이 일하면서 볏짚을 옮기다 볏단 속에 감춰져있던 그녀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이 신고했다. 경찰이 도착해서 봤을 때 그녀의 양손은 브래지어로 묶여 있었고 목에는 목도리가 감겨져 있었고 목도리로 목을 졸라 살해당했다.
화성시연쇄살인사건

화성시연쇄살인사건 5차사건현장


당시에는 연쇄살인의 심각성을 깨닫고 수사본부가 있었는데 현장에서 1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시신이 발견됐을 때 다른 때와는 달리 옷이 모두 입혀져 있었고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머리카락, 음모, 찢긴 천조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시신부검결과 천조각과 질 속에서 정액이 검출되었고 천조각과 음모에서 검출된 혈액형은 모두 B형으로 판독됐다.
홍모양의 아버지는 건축일을 하고 어머니는 공장에 나가 돈을 버는게 안타까웠던 홍모양은 날씨가 풀리면 취직하라는 아버지의 말에도 서둘러 취직자리를 알아보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또 홍모양은 중학교 때까지 충남 도대표 탁구선수를 하면서 80개가 넘는 상장과 메달을 받으면서도 고등학교에 올라와 학업에 열심히였기에 주위사람들은 더욱 더 안타까워했다.

6차살인사건

1987년 4월23일 안녕리에서는 지난 3차피해자인 권모씨의 시신이 발견된다. 지난 5차사건을 수사하던 경찰들도 다시 3차사건까지 매달렸고, 상부의 압박과 국민 여론에 쉴틈도 없이 수사를 해야만 했다.
그래도 범인의 살인행각은 계속 된다. 1987년 5월2일 봄비가 내리던 밤 9시에 회사에서 돌아오는 남편이 걱정되어 주부 30세의 박모씨는 우산을들고 버스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간다.
청색 추리닝바지와 블라우스를 입고 그 위에 청색 츄리닝 상의를 걸친 채 밤 9시30분경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박모씨는 초조하게 남편을 기다렸다. 빗줄기는 더욱더 거세져만 갔다.
한편 박모씨의 남편은 밤 10시30분경 수원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11시경에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비를 맞으며 집으로 달려갔는데 집에는 아내가 없었다. 심심해서 이웃집에 갔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날이 밝아서 아내가 있을만한 곳을 다 찾아보고 연락해봤지만 아내를 볼 수 없었고 실종된지 이틀 후 경찰에 신고를 한다.
경찰은 마을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시작했고 박모씨가 10시경에 남편이 내렸던 버스정류장에서 우산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목격한 마을사람의 증언을 바탕으로 인근 논바닥을 뒤졌는데 박모씨의 샌들 한짝을 찾을 수 있었다.

화성시연쇄살인사건

화성시연쇄살인사건 6차사건현장


수색을 해도 도무지 보이지 않던 박모씨의 시신이 실종 후 일주일 째인 5월9일 토요일 오후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한 무리의 아이들이 야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던중 무덤 옆에서 시신을 발견한다.
화성시연쇄살인 6차사건

화성시연쇄살인사건 6차 사건피해자


시신은 무덤 옆에 소나무를 가지치기하여 쌓아놓은 솔가짓단에서 발견됐는데 이 장소는 박모씨의 집에서 불과 2백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사건현장은 참혹했는데 박모씨의 상체가 완전히 벗겨진 채 양손이 뒤로 묶여 있었고, 목에는 박모씨가 입었던 블라우스와 브래지어가 감겨 있었으며 바지는 다시 입혀진 상태였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는 박모씨가 들고나갔던 우산 2개와 상의 츄리닝, 속옷이 버려져 있었다.
이 사건에서는 이상한 점도 있었는데 경찰은 시신을 부검하고 유류품을 감정한 결과 피해자의 상의 츄리닝 점퍼에서는 정액 양성반응이 나왔는데 그 혈액형이 A형이었다. 범인의 혈액형은 그간의 수사결과 B형이라고 추정됐는데 A형이 나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피해 여성이 이전과는 달리 입에 재갈이 물려있지도 않았다는 점 때문에 모방범죄나 공범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남편의 혈액형이 A형이라는 점에서 남편의 것일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화성시연쇄살인사건

화성시연쇄살인사건 6차현장 245mm 족적


현장에서는 최초로 족적도 발견됐다. 범인의 족적으로 추정되는데 크기가 245mm정도였는데 키가 작은 남성이라는 추정과 맞아 떨어진다. 벌써 6명의 피해자가 발생하자 여론과 경찰상부의 압박은 더욱 더 심해져만 간다.

7차살인사건

경찰의 수사망 때문인지 범인의 범행 간격은 좀 늘어났지만 살인사건은 계속된다. 88서울올림픽을 열흘 앞둔 1988년 9월7일 오후9시30분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에서 54세의 안모씨가 상의가 벗겨지고 양말과 손수건으로 재갈이 물린채 시체로 발견된다.
안모씨는 장남이 운영하는 수원 시내의 분식집에서 일을 도와주고 밤8시40분경 수원극장 맞은편에서 발안행 시내버스를 타고 가재리에서 내린 후 야산을 넘어가기 위해 양쪽으로 논이 있는 소로를 걸었다.
소하천을 건넌 뒤 야산을 넘으려던 피해자는 범인에게 납치되어 미루나무가 있는 위쪽으로 끌려 올라가 살해당하게 된다.
안모씨의 남편은 아들의 일을 도와주고 돌아와야할 아내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다음날 해가뜨자마자 아들과 친척들에게 연락해보며 그녀를 찾는다. 인근에 친척들까지 합세해서  찾았는데 남편의 사촌 동생 45세 백모씨가 풀숲에서 피가 흥건히 흘러내린 채로 반듯하게 눞혀져 있는 피해자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건현장에서 피해자는 양손이 블라우스로 묶여 있었고 입에는 양말과 손수건으로 재갈이 물려져 있었으며 사인은 블라우스로 목이 졸려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입고 있던 쥐색치마는 범행 후 다시 입혀졌있었다.

화성연쇄살인 7차사건

화성연쇄살인 7차사건현장


당시 피해자는 너무 처참하게 살해당했는데 범인은 안모씨를 납치하고 성폭행을 한 뒤에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복숭아를 먹다가 다 먹은 복숭아를 양말과 함께 피해자의 하체에 집어넣고 우산대로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때는 수사 중 수원시 세류동에 살고 있던 22세의 김모씨가 사건현장에 있었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있었지만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증언 또한 여러개가 나오면서 다시 수사는 난항에 빠지게 된다. 이때 여론에 뭇매를 맞으며 화성경찰서장은 교체된다.

8차살인사건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 하루 전날인 1988년9월16일 14세 박모양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놀랍게도 이 사건은 집안에서 일어났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박모양의 아버지는 아침에 학교갈 시간이 됐는데도 일어나지 않자 깨우려고 방에 들어가보니 살해당해있었다. 당시에 어머니는 이불을 들추자 딸의 하체가 벗겨져 있었으며 너무 놀란 아버지는 울새도 없이 경찰에 신고했다.
박모양은 이전처럼 목이 졸려 살해당했는데 이전과 다른점은 손으로 목이 졸린듯 선명하게 손자국이 나 있었고 얼굴에는 죽기전 몹시 괴로웠던지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고한다.

화성연쇄살인 8차사건

화성연쇄살인 8차사건 신문기사


사건 현장에서는 범인의 것이라 추정되는 음모와 슬리퍼로 보이는 희미한 물결무늬의 족적을 발견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한 결과 모발에서 티타늄이라는 금속 성분이 다른 사람보다 많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그래서 범인은 용접이나 페인트 작업을 많이 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으로 인근의 공장 32곳의 종업원들로부터 모발과 음모를 수거하여 수사했다.
범인을 잡을 수도 있겠다라는 기대감으로 열심히 음모와 모발을 채취했는데 그와중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고 한 형사에게 뽑히고 또 다른 형사에게 뽑히는 광경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근처의 경운기수리센터 종업원인 22세 윤모씨를 체포한다. 음모도 일치했다. 하지만 그 전 수법들을 따라하기는 했지만 약간씩 달랐고 연쇄살인범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8차사건은 모방범의 소행으로 연쇄살인사건은 아니다.
윤영택은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피해자의 언니를 짝사랑했었고 9월16일 밤 언니가 그 방에서 자는 것으로 알고 침입 후 강간을 시도했지만 저항해서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9차살인사건

88년 9월7일 사건 이후 2년간 조용해서 살인마가 사라졌나했다. 그러나 1990년 11월 15일 오후 6시30분쯤 태안읍 병점5리 야산 소나무 밑에서 14세의  여중생 김모양이 변사체로 발견된다.
당시에 김모양의 가족들은 가족 누군가의 생일때문에 음식을 차려놓고 김모양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밤 8시가 넘도록 김모양은 귀가하지 않았다. 그 때부터 학교 친구들에게 연락도 하고 경찰에도 신고를 했다.
결국 9시가 되자 불안해 견딜 수 없어 아버지는 인천의 동생들에게 연락해 같이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고 친척들이 자정이 되어서야 도착해서 그녀를 찾아 나선다.
밤새도록 찾아봤지만 못찾고 다음날 16일이 되어서 삼촌인 33세 김모씨가 병점5리의 야산에서 하얀 속바지와 상체에 교복이 덮인 채 죽어있는 김모양을 발견하게 된다.

화성연쇄살인사건 9차현장

화성연쇄살인사건 9차 야산 현장


발견당시 피해자는 양손과 양발이 뒤로 검은색 스타킹에 의해 묶여 있었고 입은 브래지어로 재갈이 물려있고 스타킹과 블라우스에 의해 목졸라 살해당한것으로 보여진다.
상체는 옷이 벗겨져 있는 상태이고 하체는 흰색 속바지가 입혀져 있었으며 스커트와 교복은 벗겨져 시체에 덮여 있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9차현장

화성연쇄살인사건 9차 피해자


연쇄살인사건에서 가장 어린 나이다. 그런데 범인은 오랜만의 살해였기 때문인지 김양의 필통에 있던 칼을 꺼내 김양의 가슴부위를 38번이나 그었다. 또 수저, 포크, 볼펜을 하체에 넣었다고하니 흉악하기 이를데 없다.
화성연쇄살인

9차살인사건 소나무


또한 피해자를 부검한 결과 위장 안에 소화되지 않은 잡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으로 보아 살해되기 두시간 이내에 잡채를 먹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 가족 중 11월 15일에 생일이 있어서 김모양은 아침에도 잡채를 먹고 점심에도 도시락에 잡채를 싸가지고 학교에서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점심때 먹은 잡채는 저녁 7시면 이미 소화됐을텐데 그러지 않은 것이 의아하다. 혹시라도 범인이 소지품을 뒤지다 도시락에 있던 잡채를 발견하고 억지로 먹게한 것은 아닌가라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10차살인사건

9차 사건 후 7개월이 지난 1991년 4월4일 화성시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딸의 집에 다녀오던 69세의 권모씨가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당한 시체가 발견됐다.
권모 할머니는 사건 당일인 4월3일 수원시 매탄동에 살고 있는 큰딸 집에 갔다가 저녁 6시30분경 집을 나와 수원에서 8시쯤 버스를 탔다. 그 후 9시쯤 동탄면 오산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반송리의 집으로 향하던 중 근처 야산에서 범인을 만나 봉변을 당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10차현장

화성연쇄살인사건 10차 살해현장


시신은 이틀 후 아침 소변을 보기 위해 산에 올라간 중장비 운전기사 30살 박모씨에게 발견됐는데 현장 상황은 권모씨의 목은 검은 천으로 감겨져 살해됐고 다른 사건들과는 달리 입에는 재갈이 물려져 있지 않고 손도 묶여 있지 않았다. 다만 7차사건의 피해자와 같이 질 내부에 양말이 삽입되어 있었다. 사건 내용이 이전과는 살짝 달라 모방범죄일 확률도 있지만 정액 분석결과 범인이 B형으로 밝혀지며 연쇄살인사건에 포함되어 있다.


위의 내용들은 이수광님의 ‘화성 연쇄살인사건’과 인터넷 자료들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옛날이라 수사기법이 발전되지 않은탓도 있고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흉악범을 잡지 못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직 안잡혀서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지 않느냐라는 의견도 있지만 연쇄살인마 유영철에게 물어봤을 때 범인은 죽었거나 교도소에 있을것이라고 했답니다. 왜냐하면 이런 연쇄살인범들은 사회에 있는 이상 살인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사건이 끊긴 것으로 보아 교도소에 있거나 사망했을거라는거죠. 유영철의 말이 맞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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